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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부는 날이나 날씨와 상관없이 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괴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기분과 상관없이 오전 시간에 나는 요가를 한다. 때로는 좋은 일이 생겨 기분이 좋은 날도 있고 괴로운 일로 중 (重) 한 짐을 지고 있을 때도 있으나 기분에 따라 그 파장의 길이나 폭이 다른 건 사실이다. 그래서 호흡과 명상에 집중하는 요가를 통해 '마음 다스리기'에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감당하기 힘든 일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안으로 파고드는 고통의 원인을 명상과 호흡 중에 찾으려는 습관이 생겼다. 발생하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를 향한 원망 때문에 스스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고통의 무게가 쇠뭉치로 느끼게 되는 건 가해자나 피해자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나..

기본폴더 2023.03.26

내 탓

카페인에 대한 예민한 반응 때문에 커피를 맛 대신 향으로 즐기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늘 상상 속에서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의 향을 골고루 맡으며 모닥불 피워놓은 산장이나 해안가에서 홀짝거리는 멋을 연출하는 만용으로 대신하곤 했다. 물방울이 빗줄기가 되어 창문을 두드리는 날이면 상상의 수치는 창틀 끝으로 치달아 올라 달달한 휴식에 빠지기도 한다. 늦은 시간에 커피를 마셔도 꿀잠을 잔다고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보인다면 그만큼 향과 맛을 동시에 즐기지 못한 서러움일 수도 있다. 은퇴 준비 즈음에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서 마실 용기가 생겼고 은퇴를 하자마자 아침을 맞이하면 제일 먼저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는 일이 하루 노동의 보약처럼 강력한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예전에 상상 무대에서 커피잔을..

기본폴더 2023.03.20

설레는 계절

가을이 지워진 자리에 겨울이 들어설 때와는 달리, 겨울 뒤에 오는 것이 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과 몸에서 온갖 수선을 피운다. 무겁고 답답한 것 한 겹씩 떼내버리고 나도 뭉게구름인양 떠돌고 싶고 길가에 꽃인양 괜히 눈을 흘기고 싶어 진다. 아래의 시를 만났던 그땐 지금보다 훨씬 설레었다. 멀리서 웃음을 던진다 가면인 줄 알듯이 속아주며 피워내는 꽃 속절없이 열어주는 가슴이 곱다. 빼앗기는 순결을 부추며 그 고운 숨소리 담아가는 빛으로 일어서는 여인의 향내 세상의 연인들이 꽃잎으로 다듬는 얼굴은 누구의 밤을 찾아가는 요염인가 박종명의 -꽃을 훔치며- 괜히 꿈틀대기 시작한다 봄은 그런 것이다. 은근히.... 음악: Flower Duet from Lakme 글, 사진 (구글)/작성 이 슬

기본폴더 2023.03.11

非常口

다른 건 몰라도 내가 확실히 믿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살아 숨쉬는 사람 가운데는 백 퍼센트 행복한 사람도 백 퍼센트 불행한 사람도 없다는 것' 이다. 가능하면 어려운 문제나 고통은 피하고 마음의 평안을 안겨주는 '기쁨' 의 방문만 바라는 인지상정일 뿐이다. 대체로 마주한 문제가 스트레스로 쌓이면 피하고 싶은 수단으로 술과 담배 그리고 약물 등에 의지하다보면 피폐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침묵을 배경으로 매일 요가하고 또 걷는 것도 마주치는 스트레스에서 살아남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요 처방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처방전으로도 외면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세계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코스프레를 하게 된다. 아래의 시 역시 내 나름대로..

기본폴더 2023.03.03

큰아버지의 執事

강가에 사시는 큰 아버님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은 60년대 초반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즈음이었다. 그 당시 큰아버지에게는 공무원이 되어 서울로 옮겨간 큰 아들과 서울의대를 졸업한 둘째 아들의 미국 생활이 막 시작했던 때인 걸로 기억한다. 우리 집은 고향 동네 중심가인 대로변에서 있었는데 큰아버지는 사람들을 시켜 수시로 나를 찾으셨다. 한참 신나게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불려갈 때는 정말 화가 나고 짜증이 치올라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내 두 발은 어느새 강변 큰집 대문 앞에 당도해 있곤 했었다. 내게 주어진 주 업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매청에서 들어온 담배를 판매장에서 싣고 오는 일인데 그때마다 내 앞에는 손가락에 닳아빠진 주판이 놓여 있었다. 큰아버지께선 필요한 담배 종류와 ..

기본폴더 2023.02.20

원초적 설렘

한때는 Valentines Day 가 들어있는 2월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기다려지고 바쁜 달이기도 했었다.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의 그물망에 걸려든 상대에게 선물을 전하는 사랑으로 공기가 충만한 달이다. 일 년 중 발렌타인스 날은 꽃과 쵸코렛을 파는 가게와 더불어 식당이 엄청 붐비는가 하면 우리가 운영했던 보석가게도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매상이 오르는 날이다. 가게를 접은 지도 거의 5년이 된 지금 그런 기대와 설렘임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밀쳐져 있는데... 우연히 정여울이라는 작가의 첫사랑에 대한 글을 읽게 되자 누구에게나 한 번쯤 경험한 첫사랑의 쓰고 달달한 그 기분을 떠올리게 된다.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달'이라는 간판을 가슴에 달고 싶은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 첫사랑의 대표 증상..

기본폴더 2023.02.12

십오 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가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 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기본폴더 2023.02.07

페이스북에서....

' Let it be me' 팝송가운데 내가 유일하게 가사를 기억하는 Let it be me 반복되는 가사에 단어도 어렵지 않아 기억하기도 쉽지만 따라 부르는 동안 저절로 사랑에 빠져들게 해준다. 원래는 Elvis Presley 의 목소리로 듣다가 어느날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바하마 여행 포스팅 댓글칸에 내 사진들을 따로 캡쳐해서 만든 영상이 올라져 있었기에 호기심으로 클릭을 하니 Kenny Rogers 의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Bless the day I found you... " 색다른 느낌이 내 감성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한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 이라는 단어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던 내 감성이 제대로 저격 당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부터 그 영상을 만든 ..

기본폴더 2023.01.30

진짜 내편

작년 11월 12일 생후 8주 된 강아지 Toby 가 가족이 되면서 새벽 5시 반경부터 뒤뜰에서 " 쉬~~ 쉬 ~ 푸 ~푸"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의 하루가 시작된다. 너무 이른시간이라 이웃들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토비가 실외에서 배변을 하는 유일한 타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한동안 적막하던 집안에 조그마한 생명체가 오물거리며 돌아다니고 어른들의 숨소리만 들리던 집안이 "토비야 ~" 소리로 채워지게 되어 일단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점점 현실적인 배변처리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대체로 아파트 생활을 하는 한국환경과는 달리 실외 환경이 넓고 쾌적한 미국은 실외 배변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겨우 5개월 넘긴 토비라는 생각에서 아직까지 실내에 깔아놓은 패드에다 배변을 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하루에..

기본폴더 2023.01.20

언제나 네편

'리더의 언어병법' (김성희 지음) 이 책 2부 26편에 저자는 '누나-언니'의 법칙'이라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소개가 되어있다. 그 당시 유행하는 건배사에 대한 내용인데 그중에 '누나-언니'라는 생소한 건배사가 그동안 "위하여"만 기억하는 내게 유난스럽게 마음을 갈군다. 너무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이 건배사의 뜻은 "누가 내편인가", "언제나 네 편"에서 머리글자를 딴 말이라고 한다. '언제나 니편' 이 말을 재미있어하며 읽다 갑자기 "누가 내 편일까? "라는 망원경을 들고 내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시부모님과 한 집에 살았을 당시 고부간에 이런 저런 이슈가 생겼을 때마다 남편이 내 편에 서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갇다 버렸다. 그렇다고 다큰 자식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

기본폴더 2023.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