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폴더

긍정의 품격

큐팁 2024. 1. 2. 08:31

 

나보다 먼저 일본 '후쿠오카'를 다녀온 동생 주희로부터

" 후쿠오카에 가면 선영이 언니의 클래식 번역본을 보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될 거예요"

 

설사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더라도

클래식에 문외한 나로서는 주희의 말이 막연하게 들릴 뿐이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후

나의 일상은 바다와 마을 분위기에 몰입되는 바람에

주희가 언급한 클래식 번역본에 대해 잊고 있다는 걸

나 스스로에게 들켜버린 나는 

그때부터 손에 쥔 번역본을 한 장씩 페이지를 급하게 들춰내기 시작했다.

 

일본어로 된 책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을 해서 완성된 두 권의 책

Classic 1 & 2 총 777페이지

무심하게 듣기만 했을 때와는 달리

직접 책이 내 손에 잡혀있을 때는

거의 충격이었다.

 

전문적인 번역가가 아닌 사촌언니로서 어찌 가능했을까?

 

부산으로 출항하는 선박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궁금점은 뒤로 미룬 채 서둘렀고

얼마 후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못했던 게  숙제로 남아

때로는

언니가 바로 내 앞에 있는 착각에

"그게 어떻게 가능했지..?" 혼자 되묻곤 했다.

 

 번역본이 만들어지게 된 연유(緣由)와 배경에 대해 

 전화통화로 언니의 구슬을 받아 적는 것도 한계에 미친다는 걸 잘 아는 난

언니에게 동기부여를 간단하게 작성해 달라고 요구를 했다.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2010년(58세)에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나를 습격한 왼쪽눈의 망막박리
녹내장, 황반변성과 더불어 실명을 일으키는 아주 위험한 눈병중의 하나로
아직도 현대의학으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는 눈병에 걸렸다.

 

 

유전적인 것도 아닌 렌덤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며
수술해도 또다시 재발할 수 있으며 다른 쪽 눈도 또 발병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은

 금방 실명이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쫓기게했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헬렌 켈러에 비하면

다행히

청각으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움켜쥐고

대학동아리(그림) 활동을 할 당시

바로 건너편 방이 클래식 동아리방이어서

그림이 잘 안 될 때 음악 들으러 자주 드나들면서
언젠가는 클래식 공부를 해야겠다는 그때의 야심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는 기회로 붙잡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책 2권에 총 777페이지

 

하루빨리 클래식 공부를 해서
내 머릿속에 가능한 한 많은 음악지식을 입력해 놓고 장님이 되었을 때
머릿속에 쌓아둔 음악들을 나의 돌보미에게 부탁해 들으면 되겠다고 ~~

 

CD 70개

 

수술 후 2달 정도 회복하자마자
마침
일본에서 유학 중인 딸로부터 클래식 입문에 좋은 책을 보내왔다.


운 좋게 NHK필이 클래식 초보를 위해 월 2회로
막 출간하기 시작한 잡지 같은 형태의 책을 보는 순간 향학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의 인쇄술이 뛰어나 화보 같은 음악잡지 내용은
작곡가의 작곡하게 된 동기와 역사적 배경,

그 당시 유명했던 화가들과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한 권에 8명 작곡가의 대표곡을 5분씩 들려주는
40분 정도의 CD 한 장씩을 구매하기 위해 매달 일본을 드나들었다.

 

사용된 책 70권

 

 총 70회로 끝난 그 잡지를 수십 년 전 형부가 6년간 동경대 유학할 당시 

하찮은 일본어 실력으로 노트북에 대충 번역한 것을

복습하기 위해 매번 전원을 켜서 꺼내는 일이 불편해지자

딸에게 책자를 부탁해 약 3년에 걸쳐 번역된 책이

총 2권(8곡 ×70회=560곡)이 되었다.

 

 

제 1호책 커버

 

번역이 다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내 눈이 실명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에 매달리면서

되도록이면 많은 클래식을 머릿속에 주입하려고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든다는 각오로 심혈을 기울였다.

 

내 평생 이토록 공부에 매진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었지

 

역사적 배경설명서

 

대학 가기 위해 영, 수, 국어
그리고 선택 한 과목에게만 몰빵 했던 비정상적인 한국교육을 받았던 때와는 달리

미지의 세계로의 출발은 그야말로 행복했고 

그 지식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까지 무척 유익한 삶으로 이어오고 있단다.

 

 

 

한쪽눈이 실명이 되거나 노후에 거동 못하게 된다 해도
주위 지인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클래식공부는 운전 중에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수목원에서
설치미술, 그림작업과도 변행 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는 확신으로

열정을 쏟아냈던 것이다.

 

작곡가의 작곡 동기및 비하인드 스토리 소개

 

14년 전의 위기가 없었더라면

항상 클래식공부를 해야지 하며 지금까지 미루고 미루며

어쩌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음악에 겨우 의지하며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싶으니

위기가 찬스라는 말이  마음에 더 깊숙이 각인되었고..

 

그 시대의 유명화가 소개

 

 

 

이 좋은 NHK교재야 말로

앞으로도 클래식 공부하려는 초보에게 최고 수준의 참고서라는 자부심이

내가 클래식에 애정을 쏟는 명분이 되어주나 싶다."

 

 

 

 절망 앞에 인간은 나약하고 포기하며

무너지는 게 다반사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장면 중에

여주인공인 스칼렛은

익지도 않은 무를 뽑아 먹으며 다시는 운명에게 지지 않겠다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명대사를 남겼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영혼을 살찌우는 보약이다

 

선영이 언니는

절망대신 '희망'이라는 클래식을 안았다.  

 

2024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내 영혼의 영토에 빛나는 별들을 쏟아준 선영이 언니에게 

이 글과 더불어

베토벤의 '운명'을 헌정하고자 한다.

 

 

 

음악: 베토벤- 운명 교향곡 5번

글과 사진/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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