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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모

큐팁 2023. 11. 30. 09:19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유난히도 하얀 피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계신 숙모님은

어릴 적부터 내가 닮고 싶은 여인상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부산행 버스에 오를 때마다

나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 주실 숙모님의 고운 미소가 

어느 친척집보다

숙모님이 살고 계시는 보수동에서 지내게 했다.

 

단 한 번도

못마땅해하거나 찡그린 표정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단아한 한복차림으로

운영하는 아동복 가게 '베이비 하우스'로 출근하시는 모습에서

"나도 저런 맵시로 나이를 먹어야지..." 

 

어느 여름 아침나절

안방에 놓여있던 자개 이불장 문이 스르륵 열리자

벌러덩 누워있던 내 시선이 딱 멈추고 말았다.

 

이불장 안에는 깔끔하게 개어 있는 각양각색의 이불들의 하얀 깃이

한끝도 흩트림 없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줄로  쫘악 그어진 선이 되어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 나도 저렇게 살림살이를 깔끔하게 하고 살아야지..."

 

자른 과일을 접시에 담아낼 때도 언뜻 집을 수 없을 정도로

예술적으로 담겨 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미제 땅콩잼을 삼립식빵에다 발라먹어 본 것도 그때였고

시골아이에게 누런X색으로 보이는 카레라이스도 숙모님이 만들어 주셨다.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숙모님을 찾아뵙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도

나이 드시고 계시는 숙모님의 모습이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방문 중

내가 궁금해 하던 숙모님과 사촌인 주희(딸) 그리고 나 셋이서

청와대를 돌아본 운 좋은 날의 이야기다

 

 

청와대가 용산으로 이전을 하면서부터

 '국민정원'이 되어 일반인들에게 전면 개방이 되었다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청와대 입구 인근 거리는

다양한 인종들의 한복차림이 어색해 보이는 가운데도

재미있게 보이기도 했다.

 

 

숙모님께서 내 귀에다 속삭이시던 말씀이 바로

 

 

 

평소 나의 사상이자 개념과 일치

 

 

고운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숙모님의 목소리와 함께 정원을

둘러보다가

 

 

2022년 10월 13일,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건축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게 디자인 한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Ben-Hur' 연극을 보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365석 규모의 U+ 스테이지와 어울리는

 출연진들의 수준급 연기에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3층에 자리 잡은 

이탈리안 식당 'ROMAKO'에서

 

 

숙모님으로부터

시각과 미각 그리고 분위기 모두 충족된 식사를 대접받았다.

 

 

 

여든이 넘으셨음에도

여전히 단아하신 언행을 유지하고 계시는 숙모님

 

 

 

숙모님처럼

여성이자 주부가 갖춰야 할 덕목을

제대로 따르지 못해 

죄송합니다.

 

 

 

 

음악: 2 Cellos- Perfect

글과 사진/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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