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84

헤어지고 싶은 것들

낯선 해가 바로 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 지금 나는 내 주소인 이 현실과 당장 헤어지고 싶다는 간절함에 매달린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의 시작부터 거의 2년 간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와 거리 유지 등 답답한 규제에서 해방되고 싶다. 지난 3월 제1,2차 백신에 이어 3차 부스터 샷을 겨우 맞고 났더니 '델타' 에 이어 신종 바이러스 Omicron 이 나타나 세상은 또다시 집단 페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쌓이는 피로감과 짜증 그리고 무력감 나를 둘러싼 이 검은 안개를 몽땅 걷어내고 싶다. 하루속히 바이러스 공포와 재앙에 덮여있는 2021과 이별하고 싶다. 그래서 이제 내 나이와도 헤어지렵니다. 음악: 이별의 곡 쇼팽 글, 사진/작성 이 슬

기본폴더 2021.12.27

둥근 날

오랜만에 나를 데리고 먼 길을 나섰다. 실로 몇 년만의 동행인가.... 그 먼길의 끝에는 나를 기다리는 벗이 있다는 사실에 설레기까지 했다면 일 년 전 늦가을 산사에서의 만남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기 때문인가 싶다. 들어서니 실내가 하나로 연결된 듯 세상에 존재하는 '원' 이 그 안에 그윽해 있다. 마주 앉으니 공자(孔子)의 성어가 향기를 뿜어준다.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子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세상 속에 든 서로의 시선과 생각을 과감하게 털어내는 동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크고 작은 원으로 연결이 되어 심성의 깊이에 배어 있는 그윽한 향에 서로 취하기까지 하니 시..

기본폴더 2021.12.12

허기진 수은등

두터운 주머니 속에 몰래 숨겨 논 수많은 노랫말 그 사이로 달빛 그리움 심어 본다. 터져 나온 그리움이 어느새 떨고 있는 속눈썹 위에 물방울 되어 맺힌다. 캄캄한 생각의 골짜기를 떠돌던 낯익은 얼굴 하나 눈가의 물방울 되어 창백한 두 뺨을 쓸어주는 이 밤. 허락된 언어 만으로 부족한 그리움을 풀 먹인 옷자락 소리 끝에 달아본다. 휘청 거리며 돌아가는 길목마다 밤안개로 허기를 채우는 수은등이 되어 글피쯤이나 듣고 싶은 발자국 소리 미리 그리워 찬 이슬 떨구는 밤. -작성: 이귀옥(이슬) - 음악: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조수미 사진: 구글/ 작성 이 슬

기본폴더 2021.12.07

서있는 여자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 산지 어느새 28년이 넘었다. 아무래도 30년은 무난하게 채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갑자기 이런 서두를 끄집어 내게 된 것은 어느 날 문득 지난 28년 동안 줄곧 서서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도 놀랬기 때문이다. 우리 집 부엌 스토브 바로 위 편에 (사진 참고) 옆으로 길게 짜인 식탁은 식구들이 나란히 앉아 먹게끔 구조가 되어 있다. 초창기에 나도 옆으로 놓인 의자에 나란히 앉아 먹기도 했는데 점점 그 불편함이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 앞에 놓여 있는 반찬 집어 먹기 위해 내 앞으로 그릇을 끌어당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을 때마다 옆 사람이 움직여야 하고 게다가 먹다가 필요한 반찬이나 물을 마시고 싶으면 매번 높은 의자에서 내려와 테이블 코너..

기본폴더 2021.11.30

날 좀 보소

내가 태어나자 손자를 기대를 하셨던 할머니는 원통해서 '분자'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한동안 서운해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 바로 위 언니의 이름이 '보배'라는 이유를 깨닫는 나이가 되었을 즈음이었다. 엄마가 첫 딸을 낳고 몇 년후에 첫아들도 낳았지만 그 바로 밑으로 태어난 딸이 생후 얼마 안 되어서 죽게 되자 심기가 불안한 할머니는 손자, 손녀 아무 상관없이 무조건 건강한 아이를 소원하던 중에 태어난 언니에게는 '보배'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세살터위인 언니와 나는 가족들과 고향 이웃들에게 보배와 분자로 불리며 성장을 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걸 그리도 서운하게 여겼던 할머니가 눈을 감으실 때까지 나는 늘 당신 곁에서 수행비서 노릇까지 하게 하셨다는 게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름 탓인지는..

기본폴더 2021.11.24

방문객

어김없이 찾아온 낯익은 방문객, 그 찬란한 유혹 앞에 게으름 피우던 나의 이성은 타오르는 감정과 재빨리 손을 잡는다. 나는 이 방문객의 덫에 여지없이 걸려들고 절제 잃은 질서는 테두리 없는 흥분 속에서 손가락질받는 몽유병 환자의 걸음걸이로 춤을 춘다. 아~~~ 나는 이 멋쟁이 방문객의 감동적인 몸짓에 마침내 두 무릎을 접어둔 채 일 년 내 내 감아둔 사랑을 풀어헤친다. 쏟아 내리는 주황색 가루 속에 두 눈을 잠재우고 지독히 짧은 방문에 설움을 그리다 말고 함께 떠날 수 없음에 목이 멘다. 이귀옥/작성 올해는 이 가을이랑 도망치고 싶다. 음악: Autumn Leaves/ Eva Cassidy & The London Sympony 글, 사진/작성 이 슬

기본폴더 2021.11.14

생일 이야기

뉴욕에서 살고 있는 딸이 엄마 생일 겸 주말을 함께 보내려고 오랜만에 내려왔다. 오랜만에 훈훈한 냄새가 집 안을 채운다. 매해 생일이 가까워지면 친정엄마 생각을 하며 "생일이 평일과 뭐 다를 게 있나..." 하지만 막상 생일이 평일처럼 모른 체 지나가게 될까 봐 해가 질 때까지 조급한 마음으로 은근히 뭔가를 기대하게 되는 게 너무 솔직한 나만의 고백인가.. 어느새 60 환갑 (換甲) 도 훨씬 지났고 그렇다고 칠순 (七旬) 은 아직인 고작 67세 생일 이건만 한국에서부터 시작된 생일카드 축하 메시지와 촛불 케이크 행렬이 약 2주에 걸쳐 이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태어난 날 돌아가신 종 백부님의 제삿밥이 내 생일 밥이 되어주곤 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놀라운 신분상승이라..

기본폴더 2021.11.10

후원자의 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장 5절) 결실의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 대 필라델피아 한인회 제21회 장학 수여식 행사를 치르는 내내 위의 성경말씀이 계속 맴돌았다. 2000년에 설립된 장학재단을 2013년까지 장학재단의 위원장과 운영책임자로서의 임무와 직책을 내려놓고 그 후 지금까지 고문으로 함께 해왔으니 21번째 행사에 참여를 한 셈이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 행사장이 환하고 풍성했다면 바로 샤론 황 회장님 특유의 새삼한 배려와 협조로 행사장 여기저기에 장식된 화환과 13명에게 전달될 꽃다발이 그 진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문득 순서지 한 장 없이 던킨도넛 한 박스로 행사를 ..

기본폴더 2021.11.04

셋의 효과

관계와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와 차를 마신다. 인간은 혼자 살 수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도 많아졌다. 부부동반이 아니면 나는 주로 아침이나 브런치 시간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여러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두 사람보다 세 사람의 만남이 가장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특별한 이유나 사연 때문이 아니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직선적이고 私的이라는 부담감도 있지만 이야기의 폭 또한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 속에 있게 되면 산만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아 만남이나 모임의 성격조차 파악을 못하고 헤어진다. 그에 비해 세 사람이 마주하게 되면 되면 우선 네 편 내 ..

기본폴더 202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