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문득 옷소매와 목둘레가 낡고 닳았다는 생각이 흠칫 들었다. 옷장에 걸려있는 여름용 옷들 중에 유난히 이 옷을 자주 착용했다는 것도 여름철 마다 찍힌 사진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따로 손세탁할 때나 다림질할 때마다 유난스레 꼼꼼하게 다루는 것만 봐도 이 옷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유가 뭘까? 무늬 없는 하얀색에 심플한 디자인이 평소 취향이지만 자유스럽게 四通八達 되는 넉넉함이 내 육신에게 지난 35년 동안 무한한 자유를 허락해주기 때문이지 싶다. 몇 년 후 바지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뜻밖에 윗도리랑 같은 리넨이다. 아래 위로 걸치니 천생연분이다. 입고 있으면 삼라만상이 가볍다. 물건도 시간이 흐르면 색과 모양새가 변 하는 건 당연한 법 바지 허리 고무줄이 닳아 헐렁해졌고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