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폴더 283

이 詩

아래의 詩 가그 詩였고바로내 자책의 詩였다. 그래서몰래 들춰보는침묵의 '詩' - 침묵의 터널 - 한낮에 떠돌던 열기와 소음이 저녁 그림자에 업혀가고 나면 복잡했던 긴 하루 자락 끝으로 어제 본 어둠이 밤이 되어 찾아온다. The heat and noise that floated in the middle of the day After falling in the evening shadows At the end of a long, complicated day The darkness seen yesterday comes at night. 낮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벗겨 놓듯이 밤의 침묵은 생각의 근원지와 숨어있는 양심을 들추어낸다. As the day strips away everything in the worl..

기본폴더 2021.08.02

Forever 65

한 때는 ‘버킷 리스트 작성’ 이 유행이 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았던 적이 있었다. 그 의미는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순서대로 적은 목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리스트 작성에 무관심했었던 것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희망사항들이 내 현실 조건에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내 처지나 형편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을 무모란 일에 가능성을 걸어놓게 될 경우 나중에 받게 될 상실감이나 허탈감을 당당하게 털어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65세’라는 숫자가 내 앞에서 어슬렁 대기 시작했을 때 마음 밭에서 슬슬 초조의 불길이 타 올라 흔적 없이 가는 세월 따라 무조건 휩쓸려 가는 나를 붙들고 점 하나를 찍어놓고 싶었다. 어떤 모양의 점을 어디에다 찍..

기본폴더 2021.07.27

낸시

여름이 다가오는 열기를 느끼게 되면 자주 떠 오르는 얼굴 Nancy. 그녀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일 년을 함께 살았던 필리핀계 룸메이트 었다. 당시 나는 이민 생활 2년 만에 극적으로 미국 회사에 취직이 되어 방을 구하는 중이었고 낸시는 필라델피아시 브로드가에 있는 Temple 대학병원 간호사였는데 병원 바로 길 건너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던 낸시를 알게 된 것은 바로 같은 병원 간호사인 언니로 통해서였다. 일반적으로 살기가 좋은 지역에 자리 잡은 건물일 경우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방 값이 비싸지만 내가 살기로 했던 동네는 그 반대 었다. 지금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신천지로 변했지만 그 당시는 병원을 제외한 주변 건물들은 거의 비어 있는 데다 깨진 창문을 나무판자로 막아놓은 것이 페..

기본폴더 2021.07.20

그 여름

- 오이 - 오랜만에 날 오이 몇 조각을 이마에 올려놓았다. 농사꾼이 시원한 바람을 만나듯 한 순간에 불현듯 잊고 있었던 우스운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 여름 땡볕 사이로 미쳐 다 떼어내지 못한 오이 조각을 얼굴에 달고 대문을 향해 튀어가는 내 뒤로 벌겋게 화난 엄마의 얼굴이다. 넉넉한 것이라곤 맑은 공기와 동네 인심뿐 이였던 그 시절, 여름철에는 오이가 반찬의 주인공이었던 시절. 오이냉국, 오이무침, 오이짠지, 그리고 고추장, 된장에 찍어 먹는 날 오이는 식구들 식성 하고는 상관이 없이 무조건 여름 밥상을 차지하곤 했다. 특히 오이 한 개만 있으면 간단하게 냉국을 만들 수 있기에 아침, 저녁 밥상에 오이냉국은 단골 메뉴였던 것이다. 내 얼굴에 얹혀 있던 오이 조각도 바로 그날 저녁 반찬용으로 시장에서 사..

기본폴더 2021.07.13

감히...

지난 달 필라델피아 한인회 회장으로부터 인도 컴뮤티가 주최,주관하는 - INT'L YOGA DAY - 날 행사에 한인컴뮤티도 협조하는데 의미를 두기위해 내가 시연을 하면 어떠한지를 물어 왔다. 물론 즉흥적으로 답변을 못하고 며칠을 고민했던 것은 감히 요가 강사 초년생인 내가 요가의 종주국인 인도인들 앞에서 요가 시연을 한다는게 어불성설 (語不成說)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사람들을 앞에서 인도 사람이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는 격과 동일시 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장의 언급대로 어쩌면 요가의 효과를 잘 알고 요가화보집 출간 준비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좋은 기회가 되며 더 나아가 그들의 문화행사에 우리 한인들도 협조를 하게 된다면 다민족끼리의 건강한 화합의 장이 될 것이라는..

기본폴더 2021.06.26

딴 세상

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Tribeca'라고 알려져 있다는 것에 이어 바로 두 블럭정도의 거리에 있는 Greenwich Hotel의 소유주가 유명 배우 Robert De Niro Jr라는 사실을 안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딸로부터 호텔 라운지에서 드 니로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호텔에 대한 궁금증이 부쩍 생기면서 언제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했었지만 실제로 그 호텔에서 숙식을 하게 될 줄이야..... Father's Day 선물 오후 1시경에 Hotel check in을 하면서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과 그림에 더불어 지금까지 다녀 본 호텔보다 공간은 좁아도 동양적인 장식품이 간간히 돋보이는 묵직한 분위기는 소문대로 Antique Hotel 잠시 침대에 ..

기본폴더 2021.06.25

다림질을 하다가..

부엌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문득 옷소매와 목둘레가 낡고 닳았다는 생각이 흠칫 들었다. 옷장에 걸려있는 여름용 옷들 중에 유난히 이 옷을 자주 착용했다는 것도 여름철 마다 찍힌 사진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따로 손세탁할 때나 다림질할 때마다 유난스레 꼼꼼하게 다루는 것만 봐도 이 옷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유가 뭘까? 무늬 없는 하얀색에 심플한 디자인이 평소 취향이지만 자유스럽게 四通八達 되는 넉넉함이 내 육신에게 지난 35년 동안 무한한 자유를 허락해주기 때문이지 싶다. 몇 년 후 바지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뜻밖에 윗도리랑 같은 리넨이다. 아래 위로 걸치니 천생연분이다. 입고 있으면 삼라만상이 가볍다. 물건도 시간이 흐르면 색과 모양새가 변 하는 건 당연한 법 바지 허리 고무줄이 닳아 헐렁해졌고 바..

기본폴더 2021.06.15

새 얼굴

학창 시절에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했던 나는 중학 시절에는 벽지 도안으로 군 대회에 참여해서 상을 따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진짜 많이 그렸던 것은 바로 만화책 주인공의 얼굴이었다. 한 번은 고향에서 함께 성장했던 친구가 미국을 방문해 나를 만나러 왔다. 거의 40년 만에 만난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쏟아낸 첫마디 "너 그때 만화 참 많이 그렸잖아.." 그 정도로 나와 함께 성장했던 친구들에게 나는 그런 아이로 각인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었지 수업시간에 몰래 그리다가 선생님한테 들켜 혼나고.... 얼굴을 그리려면 제일 먼저 동그라미부터 그려놓고 그다음에 눈과 코 그리고 입, 순서로 얼굴이 완성된다. 어른이 되면 서서히 동심은 사라지지만 지금도 '동그라미' 하게 되면 나는 여전히 얼굴을 제일..

기본폴더 2021.06.11

처방전

한 때는 마음에 울분이 생기거나 속에서 화산이 터질 것 같으면 서랍을 정리하거나 바닥 구석구석을 돌아가며 닦으면서 올라오는 열도 내리고 그러다 보면 마음도 정리 정돈이 되곤 했었다. 최근에는 마음에 그늘이 내리기 시작하면 얼른 도마와 칼을 잡는 습관으로 바꿨다.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요리 가운데 직접 만들어 먹기에 간단한 것들을 흉내를 내다보면 치밀어 올라오던 울화도 음식과 함께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재가 되는 것 같아 이 방법을 자주 써먹고 있는 중이다. 평소 짠 음식보다 매운 음식을 더 좋아하는 편인 나는 당면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면 그에 대응할 매운맛의 강도를 한층 더 높여서 조리를 한다. 코가 뻥 뚫리자 속도 뚫리고 눈물까지 흘리게 되는 걸로 보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당분간..

기본폴더 2021.06.01

너를 만나...

아침에 차고 문을 열고 나갔다 어둠과 함께 찾아오던 우리 집. 그냥 먹고 잠만 자는 공간으로 취급하던 그때는 우리 집에도 봄이 오고 꽃들이 피고 지는 계절이 있는지도 몰랐다. 돈 버는 일이 이민 삶의 목표요 신앙으로 믿었는데 가게를 닫고 한 동안 숨을 고르고 나니 그때서야 집 구조에서부터 계절의 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 점점 관심이 폭증하기 시작하게 되자 그동안 생물 대신 집 안에 무생물로 된 장식물들을 하나씩 들어내기 시작했다. 텃밭에 자라는 것들에서 시작된 관심이 화초를 사다 심고 물 주고 자라는 걸 매일 확인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숨을 토해내는 생명에 귀를 기울이게 되자 손길도 따라가게 되었다. 이제는 실내보다 햇볕을 쬐며 바깥을 둘러보며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다. 자..

기본폴더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