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은 하나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갖게 되는 여유와 또한 자유가 허락되는 환경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것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하며 따라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선택의 범위가 넓고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판단하는 능력이 혼돈 속에서 상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에게 두 개의 사탕 중에 갖고 싶은 하나를 고르게 하는 것과
모양과 색깔이 각각 다른 여러 개의 사탕 중에 딱 하나만을 고르도록 하는 것은
꼬마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고역이나 고문이다.

주로 모노톤 립스틱만을 고집하던 내가 어느 날 빨간색 립스틱에 꽂히는 바람에
인근 화장품코너를 찾았다가 Red Lipstick color 와 연계된 색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를
그때서야 알고 놀랐다.
빨간색이라고 적혀있는 것마다 손등 위에 긋다 보니 손등은 불들이 되었고
내가 찾던 게 빨간색이었는지 모노톤인지 한참을 헤매다 그냥 돌아왔던 적이 있다.
빨강하나를 선택하는데 별의별 이름으로 된 빨강을 다 시험해봐야 했던 힘든 날이었다.

필요한 한 가지를 위해 수십 가지를 쳐다봐야 하는 세상이다.

바쁘다는 말을 숨 쉬듯 뱉어 내면서도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고 차원의 상술이 유도하는 대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게 느끼도록 하는 놀라운 상술 효과에 놀아나는 우리 인간의 단순함이
쉽게 들어 내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입을 옷도 신을 신발도 많이 소유하고 있다. 뭘 입을까 하고 고민 아닌 고민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소중한 시간이 이와 같이 엉뚱한데 쓰이고 있기 때문에 늘 바쁜 것이 아닌가 싶다.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한 개 이상을 두고 있으며 먹을 것들을 그 안에다 잔뜩 쌓아놓고 있다.
많이 먹고 건강하면 다행이지만 너무 먹어 반갑지 않은 병들을 얻고 있으니 문제다.
먹을 것이 시원치 않을 때 절제하는 것과 잔뜩 있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데 절제를 하는 것은 다르다.
못 먹는 것이 아니고 이성적으로 절제를 해야 하니 그것도 고문이 된다.
많이 먹어 병이 생겼으니 먹어야 하는 약 종류도 많다.
병을 만들어 약을 먹는 격이다.

따라서 매일같이 건강에 좋다는 식품과 해롭다는 식품이 발표되는 바람에
멀쩡한 음식들이 쓰레기 통으로 버려지기도 한다.
굶어 죽어 가는 이웃들에게 엄청난 죄를 짓는 격이다.
매일 열어보는 우체통 안에도 생활정보와 지식안내서가 너무 많이 들어있다.
경쟁 사회 속에 살아남기 위해 현대인들은 얼마나 더 많은 지식정보가 필요한 것일까.
눈으로 귀로 들어오는 것이 넘치다 보니 모두가 자칭 박사요 의사다.

새로운 것이 많으니 유혹도 욕심도 많다.
그 결과로 불어나는 것은 빚이니 고민도 많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못 가졌으니 질투도 미움도 많고 범죄도 다양해져 가고 있다.
문제가 많은 사회는 전문 변호사도 많다.
오늘은 어제보다 많아졌고 내일은 오늘을 초과하게 된다.
가졌으면 감사와 기쁨가운데 마음도 넉넉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 우리는 욕망 때문에 불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자 ‘에피쿠로스’의 말대로
욕망을 충족함으로써 기쁨보다 오히려 고통과 문제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실 불편 없이 사는데 필요한 것이란 대체로 한정이 되어있다.
그것은 한꺼번에 두 콀례의 신발을 신을 수 없고 두 벌의 옷을 억지로 껴입지 않는 간단한 이치와도 같다.
두 개중에 고를 때는 선택의 가치와 그 자유를 맛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선택'은 축복이 아니라 부작용이 되고만다.
그것은 선택에서 제외되었던 그 나머지 것들에 대한 집착과 미련 때문에 생긴 욕심 때문이다.

새삼 '인간의 행복이 물질적 환경과는 상관없다'라고 주장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가 들고 다녔던 등불을 나도 들고싶다.

음악: Silencio- Beethoven
사진(pinterst), 글/작성
이
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