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늦은 오후 무렵
동네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비 갠 저녁시간의 풍경은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엔
미처 못 떠난 낡은색들 앞에 나는 신음하듯 감동, 감탄을 핸드폰으로 대신했다.

이런 내 감정과 닮은 어느 작가의 표현을 살짝 빌려본다.
'가을은 자신을 바치기 위해 성숙이라는 색상의 옷을 맞춰 입는가...'

오 헨리는
"잎사귀야. 담쟁이에 붙어 있는 잎새 말이야.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면 나도 가는 거야."
라고 슬프게 말을 해서
나를 비롯해 만인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지만


이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있는 찬란한 마무리의 목격자가 되어
세월의 맛을 가슴에 품고 생명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듯



주변에 남아있는 마른색에 환호와 탄성을 마음껏 흘려봤다.


사람들이
뜨겁게 불태우며 사라지는 일몰풍경에 영감과 희망을 얻듯

나 또한
가을이 갈무리하면서 남겨놓은 이 찬란함에


최선을 다하는 진한 커피 향과 같은

초저녁을 불태워보는 기회를 만났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해인 수녀님 또한 이런 순간을 경험했던 모양이다.

가을의 시작부터
시로 물든 내 마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조용히 흔들리는 마음이
너를 향한 그리움인 것을
가을을 보내며
비로소 아는구나
곁에 없어도
늘 함께 있는 너에게
가을 내내
단풍 위에 썼던
고운 편지들이
한 잎 한 잎 떨어지고 있구나
지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동안
붉게 물들었던 아픔들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려
새로운 별로 솟아오르는 기쁨을
나는 어느새
기다리고 있구나
가을일기-이해인


음악:
글과 사진/작성
이
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