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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

큐팁 2022. 7. 20. 22:24

 

신나게 돌아가던 세탁기에서

전에 들어보지 못한 괴음이 나기 시작했다.

 

10년 훌쩍 넘기는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에 놀라 일단 중단을 했다.

 

 통 안에 든 옷가지들을

끄집어내려고 하니 비누 물에 담긴 탓인지 꽤 무거운 데다

하나씩 들어 내놓고 보니 생각보다 엄청난 양이다.

 

일일이 손으로 헹궈내다 보니

그동안 우리 생활에서 세탁기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지와 

그 공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고장이 난 건지

망가진 건지를 확인해줄 수리공이 올 때까지

그 누구가 아닌 내가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아 두었다가 자동차로 낯선 동네 Laundromat에 가서

한꺼번에 빨면 된다고 생각하는 남편과의 논쟁은 무모할 뿐

 

" 그래 이빨 없으니 잇몸으로....."라는 결심으로

매일 손빨래를 시작했다.

 

 

 

 여름철이라 옷이 가볍고 또 밖에다 널면 금방 말린다는 게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골프장을 다니는 남편에

매일 요가에

걷는 게 일상인 내가 갈아입는 옷이 두벌 이상씩이다.

 

 

 

세탁기 없이 시작했던 미국 이민 초창기 때 하던 식으로

대야에 담가놓고 손으로 빨던 중에

한쪽 켠에 놓여 있는 빨래판이 내 시선을 확 잡아끈다.

 

세탁기를 두고도

주로 손빨래를 하셨던 어머님의 빨래판이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만 쓰시던 걸로만 생각한 나머지

여태까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거기에 받침대로만 여겼던 빨래판이 내게 구원자가 될 줄이야...

 

 

 

게다가 어머님이 구비해두신

손 빨랫비누까지 빨래방 선반에 있다.

 

대야 한가운데 빨래판을 놓고 손비누로 빡빡 문지르니

손으로 대충 비빌 때 보다 그 느낌의 차원이 다르다.

 

문득

어린 시절 고향 강가에서 그리고 동네 우물가에서

손으로 빨래를 하던 풍경이 흑백 필름처럼 펼쳐진다.

 

그래 우리는 그런 매뉴얼로 살아었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손빨래 시작한 지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견딜만 한 것은

바로

우리가 예전에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부족하고 없던 시절이

위기를 극복하고 대처하는 강력한 처방전이 될 줄이야....

 

그런데

만약 우리처럼

갑자기 세탁기가 고장이 나면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를 할까?

 

진짜 궁금하다...

 

 

 

 

 

노래: Leela James - A Change Is Gonna Come.

글, 사진/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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