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폴더

나비 밥그릇

큐팁 2022. 7. 13. 05:26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아한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 날에 가죽을 품고 이웃들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준관의 '구부러진 길 ')

 

 

 

                                                                                                                     

 

여름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떠올리는 시다.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여태껏

나비도 밥그릇이 있다는 것 상상해본 적도 없던 내가

나비의 밥그릇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를 만나고 나서다.

 

반듯한, 매끄러운 실크로드를 걸어온 사람보다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 등에 업히고 싶은 것도

꺾일 때마다

구부러 질 때마다 

"웬래 다그런 것이지 뭐"라고 혼자 말하는 

마른 등짝에다

 코를 비벼도 될 것 같아서인지도 몰라

 

 

음악: Bilitis-generique by Sarah Brightman

글, 사진/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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