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폴더

노벨 忍耐 상

큐팁 2023. 4. 29. 08:15

 

승자도 패자도 없이 링 위에서

권투장갑 낀 채로 기싸움을 해오길 어느덧 41년

 

사람들은 '결혼기념일'이라고 말하지만

'결혼 서바이벌'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혼생활이 달콤한지 씁쓸한지 휫갈리는 상태에서 권태기로 진입하면서 

서로에 대한 실망,후회 등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했다.

 

 

 

 

제7차례에 걸쳐 실시한 대한민국 경제개발 5개년의 성공이

오늘날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다면

41년째 이어오는 나의 버티기 계획은 영원한 것인가...

 

아이들 예민한 성장기를 깃점으로

조금만 참으면 대학진학을 하게 되어 내 책임도 덜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15년 이상을 버티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첫째가 떠나도 여전히 둘째가 남아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차례로 대학입학과 졸업할 때 즈음

함께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도 점점 쇠약해지고 계신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 서바이벌 30년 되던 해

나 홀로 유럽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용기를 냈다. 

잘 참고 잘 견딘 자체포상으로....

 

 

 

자식 둘다 대학졸업하면 더 이상 참지 않겠노라고 침묵의 벽에 서명을 해놓고

돌아서보니

내 양심벽에는 책무( 責務) 의무(義務)라는 단어가 십계명처럼 새겨져 있었다.

 

 

 

시아버님에 이어 시어머님까지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장성한 자식들이 사회인으로 자리 잡는 사이에

링 위에는

더 이상 버틸 기운마저 빠진 둘만 남았다.

 

 

 

생각해 보니

박정희정부 5개년 계획보다 내 결혼유지를 위한 버티기 계획이 더 길었고

링 위에는

아직도 혼자가 아닌 둘로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남편의 오랜 친구가 날더러 '노벨 평화상' 받을 자격 충분하다고...

 

비록 농담일지라도

누군가로부터 내 인내심을 인정받는 것에 자족하며

문정희의 남편이 내 남편인양 잠시 착각에 빠져보고 싶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남편 / 문정희

 

 

Go for another year? 

 

음악: Czardas -HAUSER &Caroline Campbell

글, 사진/작성

 

'기본폴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by 이야기 1  (25) 2023.05.16
- 천연(天然) 한 마음-  (30) 2023.05.07
'멋'  (37) 2023.04.14
팔짱 끼고 싶은사람  (47) 2023.04.04
굴레  (23) 202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