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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큐팁 2024. 4. 22. 10:14

 

 

 

그날은

Facebook에서 눈으로 배운 요리를

손으로 직접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았더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던 날이다.

 

 

 

 

요즘 들어

오트밀과 당근 그리고 각종 견과류를 주 재료로 베이킹에 정분을 쌓는 중인데

그날도 점심을

당근 케이크로 대체를 하면서 일부러 오후 시간을

달달하고 길게 늘어놓는 오만도 부려본 날

 

 

 

대체로

늦은 오후 즈음이 되면

머릿속으로 저녁메뉴를 작성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뉴욕 딸로부터 Text 메시지가 왔다.

 

 

 

벽에 달린 달력을 흠칫 보니 17

 

 

 

OMG!!!!

우리가 42년 전에 결혼했던 날이 아닌가...

 

 

 

 

지난 42년 동안

모른 척은 할 망정 단 한 번도 잊지 않는 엄마보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슬그머니 넘기려는 아빠를 겨냥해서

해마다 미리 알려주던 딸마저 이번에는 아슬아슬한 시간에...

 

 

 

 

그 와중에 

미안스러워하는 남편에게 나도 깜박했다는 고백대신(어차피 하루는 이미 마감)

" 요즘 강아지한테 너무 빠져 있더니... 그럴 수도 있지 뭐..."  이 순발력에 스스로 놀랬다.

 

그렇게 시작된 동지의식은

 늙어가는 아비의 체면이 더 깎이지 않기를 바라는 연민으로

멋지게 포장된 몇 줄을 딸에게 보내고 나니

나라를 구한 기분으로 42주년을 마감을 할 수 있었다.

 

한때는

달력에다 붉은 펜으로 굵게 표시를 해놓았던 게 무색할 만큼

전혀 눈치를 못 채는 남편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날을 세운채 벼르고 있다가

다음 날 권투장갑을 끼고 링 위에 올라서기도 했고

 

어느 해는

서러운 마음을 데리고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사온 케이크로 마음을 달래며 

살량거리는 4월이랑 데이트를 했던 그 젊음이 차라리 부러운 그날.

 

@2022년 4월

 

30년 동안 '을'의 위치에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지배당하고 산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홀로 유럽으로 떠났던 당시 날로 서있던 오기는 간 데가 없고

세월이 약이 된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42년을 링 위에서 격투를 벌이다가

서서히

 부부 아닌 동지로 살아가고 있음을 절감했던 날.

 

 

@2015년 지인 아들 결혼 피로연회장

 

 

그런데 

충격에 가까운 감동은 그다음 날이었다.

 

 

 

골프장에서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장미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상상도 기대로 전혀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눈이 부셔 몇 번을 떴다 감았다 해야 했다.

 

예전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장면이

42년 만에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50송이 장미가

내 눈에는 백만 송이처럼

눈이 부시던 그날!

 

 

 

 

 

노래: 백만 송이 장미 원곡

글, 사진/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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