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부엌 창 건너편에 붉은 고개를 들고 있는 화초를 바라보며
요가를 하는 즐거움은 바로 팬데믹 시작과 함께다.
요가란
정신과 신체와 그리고 감정이 서로 통해야 하므로
한지점에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나는
창 너머 화초에 마음을 연결해놓고 요가를 시작하게 되면
저절로 온 몸이 紅 이된다.
영어명: EUPHORBIA MILI (Crown of Thorn)
작년 한 해는
제라늄 덕분에 답답하기 그지없는 나날의 우울함을 이겨 낼 수 있었는데
바로
매일 아침 창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제라늄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려앉는 계절이 되자
그렇게 요염을 부리던 제라늄도 꽃과 잎이 시들어지면서
줄기도 제 빛을 잃고 마르기 시작했다.
손이 닿는 곳마다
마른 껍질이 바삭거리며 죽음 앞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지저분한 부분은 가위로 잘라내며 관찰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붉은색은 사라지고 마른 색만 남아있던 제라늄
봄이 다시 찾아오자 앙상한 줄기에서 소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생명은인 나에게 대한 예의인 듯...
숨을 쉬고 있는 듯 한 부분을 돌려가며 햇빛을 쬐어 주었더니
줄기에서 새 가지가 생겨나고 여기저기 이파리들이 서로 안면 있다며 옹기종기 달렸다.
마침내 그 끝에서 꽃 봉오리가 맺히더니 작년보다 더 짙은 색으로
"저예요" 하며 내 앞에 나타났다.
은퇴 전
멀쩡한 화초를 죽이는데 일가견이 있던 나로서는
경이로운 사건이 분명하다.
가을에 접어드니
텃밭 풋고추 자리에 홍고추가 달려 텃밭 분위기도 가을이다.
베란다 테이블 붉은 여신들 옆에 사뿐히 데려다 놓았더니
자기들만의 紅색으로 터질 듯 한 시샘을 흘리고 있다.
여름 내내 화분에서 키 자랑하다 죽어가는 베이즐 뽑아 버리다가
혹시나 해서 줄기 한 부분을 잘라내어
유리병에 자신감이랑 살짝 담가놨다.
당분간
다른 것은 안 보이고
창 건너 紅 색만 보게 될 것 같다.
이 또한
팬데믹 탓이라고 해야지 뭐 ~
음악: Flower Duet "Lakme"
글, 사진/작성
이
슬
'기본폴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건네는 잔 (0) | 2021.10.20 |
---|---|
마음챙김 (0) | 2021.10.14 |
외로운 얼굴 (0) | 2021.09.28 |
모두 고맙습니다 !! (0) | 2021.09.23 |
사라지는 것들 중에... (0) | 2021.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