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을 계획했을 때
제일 먼저 ‘밀양’ 을 생각했다.
그 이유는 내가 ‘고모’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밀양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모' 하게 되면
항상 구포를 먼저 떠올렸고
또 ‘구포’ 하면 고모님을 제일 먼저 떠올렸던 나로서는
‘밀양’ 으로 고모님을 찾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고모부님께서 구포에서 오랫동안 건축사업을 하셨는데
가끔 자가용 지프차를 타고 우리 마을에 오시면
이웃 사람들이 고모부 자가용 차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장면이
아직도 내 빈티지 창고에 포개져있다.
학창시절 방학이 되면
고모님이 계시는 구포 행 버스를 타는 것이
그지없는 즐거움이 되었던 것은
고모님 댁의 윤택한 생활을
짧은 시간 만이라도 맛볼 수 있었기도 했지만
고모님의 정숙하고 깔끔한 몸가짐이
어린 내눈에도 남달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면 조간신문을 마루에 펴놓고
빨간 색연필로 기사 아래에 꼼꼼히 줄을 긋고 계시던 모습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모부께서는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점심은 꼭 집에서 드시는데
그때 밑줄 친 부분만 읽게 하실 요령으로
매일 아침 중요기사에 줄을 긋는 게
고모님의 하루 일과였던 것이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그득 담아
마루 끝에 앉아계신 고모부님 발을 씻겨드리던 그 장면도
내 기억창고에 천연기념물로 보관되어있다.
-펌-
성경책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는 구절을 읽게 되면
고모부님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던 고모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리기도 한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올 시기에
구포에서 잠시 서울로 옮기신 걸로 기억하지만
내 기억 속의 고모님은 늘 구포에 계셨다.
고모부께서 돌아가신 후
구포가 아닌 밀양에서 노후를 보내시고 계신 것은
막내아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고
고모님이 구순을 넘기신 것도 놀랐지만
그 연세에 안경 없이 독서를 하시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여전히 맑은 정신에 진중하기까지 하셨는데
세간에서 세월이 야속 다고는 하지만
흐르는 시간이 훼손시키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구글;펌-
그날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서인지
고모님의 침대에 마주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다 생각이 통 하셨는지
당신의 창의력이 고여있는 수필과
감성이 배어있는 시를 꺼 내놓으셨다.
마치 인쇄기로 찍힌 것처럼
한자씩 한 줄씩 반듯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내용의 일부분 만이라도 드러내
그때 느끼셨던 당신의 감성을 우리말로 내게 전달하시려고
안간힘을 다 쓰시던 고모님의 모습에서
김 열규 교수의 '노년의 즐거움'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고모님 손수 만드신 파우치)
완벽 ,, 성숙, 노년은 잘 익은 가을 과일이다.
그 인격, 인품 , 재주 , 솜씨. 기술 등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나?
누구에게나 모범되고 기쁨이 될 수 있는 나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위해서나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다.
내가 미국에서 정신없이 사는 동안
고모님께서는 적지 않은 연세의 삶을 소홀히 않으시고
사회의 한 구성 인으로써
더 나아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소중한 일원으로서
생산적인 활동을 많이 하셨다는 걸
보관하고 있는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태생 영국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 소개하신 것도 그날 그 방에서다.
특히 그의 저서 중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소설 내용을
어찌나 감명 깊게 완벽하게 소개를 해 주셨는지
당장 구입해서 돌아오는 비행기 내 안에서 완독을 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고모님 침상에서
서로의 어깨와 허리를 내려놓은 그대로
장장 6시간을 보냈다며 놀라워했다.
“네가…”
중간중간 숨을 고르고 허리를 푸실 때마다
혼자 말을 하실 때 나는 내 안에 흐르고 있는 피를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 이슬-
문학을 논하시고
당신의 가슴에 품은 열정을 관조하듯 풀어내시는
노련한 상대가 구순이신 내 친 고모라는 사실이
내게 새로운 도전이다.
대한민국에 97세의 김형석 명예교수가 있다면
내 피 속에는 90세의 정숙한 정 상희 고모가 있다.있다.
우리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가 없다.
고모님이 계시는 '밀양'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글, 사진/작성. <6.6.2018>
이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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